안녕하세요. 봄이 온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날씨가 제법 무더워졌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더위가 길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건강 더욱 유의하시면서 활기찬 5월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글에서는 스페인 내전의 끝에 대해 잠깐 언급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체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독재자들이 지배하게 된 이베리아
팔랑헤가 최종적으로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공화국이 붕괴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독재자들이 지배하는 구조가 됩니다.
지난 글에서도 다뤘지만 포르투갈도 살라자르가 독재를 계속하고 있었고, 이번 스페인에서도 프랑코가 정권을 쥐면서 독재정권이 서게 되었습니다.
둘은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에 긴밀히 협력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독재정권들을 이끌었습니다. 살라자르나 프랑코나 반공을 기치에 앞세우며 우익 세력 및 가톨릭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살라자르는 프랑코가 봉기하자 1만여 명의 부대를 편성, 쿠데타군을 적극 지원하고 물자 반입을 허용하는 등 이탈리아나 독일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39년 3월 살라자르와 프랑코는 이베리아 협정을 체결합니다. 이 협정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상호불가침 및 불개입 정책을 천명하면서 양국의 우호와 협력을 증진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협정의 목표 중 하나가 이베리아 반도의 전역에 정치적 동일체제를 유지하자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이베리아 협정은 계속 수정되긴 했지만 양국이 동일한 체제를 유지한다는 테마는 계속되었습니다.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지다
프랑코와 살라자르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살라자르와 달리 프랑코는 대대적인 숙청을 통해 반대파들을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라자르라고 해서 숙청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국외추방 수준이었지 대대적인 학살이나 사형 집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코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정치범 처형 등을 통해 반대세력을 적극 정리했습니다.
일단 프랑코는 내전이 끝난 뒤에도 자신에게 반대했던 공화파에 대한 학살과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승리한 팔랑헤를 중심으로 백색테러가 적극적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5만여 명 이상이 학살됐습니다.
아울러 1939년 '정치적 책임법(Ley de Responsabilidades Políticas)'을 통해 1934년 10월 이후 공화파 활동에 참여한 모든 개인들을 국가 반역자로 규정,
재산을 몰수하고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제한하는 등 정치적 탄압을 시작합니다. 특히 이 법은 다른 법들과 달리 과거 제2공화국 시절 합법적으로 이뤄졌던 정치적 활동까지 그 대상으로 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하게 됩니다.
일단 벌금은 100페세타부터 필요하면 그 사람의 전 재산까지 가능했고, 연좌제가 적용돼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등 가혹한 법령이었습니다. 스페인 인구의 약 2%가량이 해당 법률에 적용을 받아 처벌을 받았습니다.
1년 뒤에는 '프리메이슨 및 공산주의 탄압법(Ley de Represión de la Masonería y el Comunismo)'을 제정, 정치적 활동에 대한 제한을 강하게 두었습니다.
때문에 공산주의자, 혹은 프리메이슨으로 몰린 사람들에게는 정치적인 낙인이 찍혔고, 투옥 등 숙청이 집권 초부터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스페인 프랑코 정부는 집권 당시 내전과정에서 이탈리아, 독일 등 파시즘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은 군단 규모의 인력을 적극 파견하고, 물자와 장비를 제공하며 정권 성립이 기여했습니다.
스페인 프랑코 정부가 막 운영을 시작하는 즈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 전역에서는 다시 전쟁 바람이 불게 됩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스페인에게 참여를 요구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