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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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합니다. 1900년대만 해도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일본은 본토에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가 이뤄지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는데요. 그 이후에 일본인들로부터 '외국인 쇼군(중세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수장)'이라고 불리던 미국의 맥아더 원수는 일본에 군정을 설치, 통치를 실시합니다.
당시 일본은 미국 본토에 최초로 공격을 가했던 사례(진주만 공습)를 가진 나라였고, 태평양 전쟁 중 연합국의 피해도 막대했기에 워싱턴 미국 정부에서는 일본의 덴노를 전범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을 정도로 일본에 비우호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50년의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전쟁기간 중에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을 지원하는 병참기지의 역할을 수행했고,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면서는 미국의 아시아 전초기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는 1955년이 그 시점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동안 전범기업이었던 미츠비시 등의 재벌 기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기업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1960년대 일본 증시도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이미 1960년대 일본에서는 은행에 예금을 드는 것보다 증권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왔습니다. 1960년대 중반 일본의 증권사들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의 특별지원 등으로 인해 위기 타개가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부터 일본의 증권시장은 고속성장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일본 니케이 지수는 2,000포인트를 돌파합니다. 사실상 1970년대에 이미 일본의 경제는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실제로 미국 니케이 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은 시점은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2,000포인트를 돌파했던 때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이미 1975년에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8천 달러로, 1만 5천 달러에 그친 미국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실제 1970년대 2,000포인트를 돌파한 일본의 니케이 지수 역시 75년대 이후 5,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순항합니다.
1970년대 일본에 불어 닥친 오일 쇼크는 일본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연비를 앞세운 일본 자동차들이 해외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수출 중심에 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았던 일본 입장에서 오일쇼크는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1973년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일본 정부는 건설경기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즈음 일본에선 부동산 거품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성장은 계속됩니다. 일본의 니케이지수는 1985년 13,000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15년 만에 6배 이상 성장한 수치이기도 합니다.
한편, 1980년대 일본의 비약적 성장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일본의 주요 시장이었던 미국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소득세는 줄이고 재정지출은 유지하면서 재정적자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면서 소위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함께 일어나는 현상)라는 최악의 사태를 경험합니다.
이에 미국은 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 재무장관 회의를 엽니다. 여기서 미국은 달러화의 가치상승이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의 하나라고 지적, 달러의 평가절하를 요구합니다.
특히 집중 논의된 것은 G5 국가 중 독일과 일본의 통화였는데요. 이에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기로 결정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1985년의 플라자 합의(The Plaza Accord)입니다.
플라자 합의 결과 일본의 엔화는 달러당 240엔에서 1년 만에 120엔까지 뛰어오르는 등 그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당시 수출주도형 경제로 엔고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 정부는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실제로 바로 일본 중앙은행은 86년 1월부터 87년 2월까지 5차례에 걸쳐 금리를 5%에서 2.5%까지 인하하고, 통화량(M2+CD기준)도 8~11% 속도로 팽창시켜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합니다.
이로 인해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은 일본의 부동산, 금융 등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1986년 12월부터 1991년 2월까지 증권시장의 랠리가 계속되었는데요.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 니케이지수는 30,000포인트를 돌파해서 38,000포인트에 이릅니다. 실제로 일본의 83~89년 니케이 지수의 상승률은 연평균 25%에 이르렀고 85~89년 사이에는 무려 170% 상승률을 기록합니다. 추후 일본 니케이 지수는 1987년 10월 19일 발생한 미국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사태에도 별 충격을 받지 않았고 이는 일본 증시의 자신감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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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