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을 계속 이끌어왔던 민주당 정부가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자 원수였던 아이젠하워는 국민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공화당 후보로 출마, 미국 민주당의 스티븐슨 후보를 물리치고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이후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1960년대 초까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합니다.
1950년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격변기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진영이 냉전(Cold War)이라 불리는 장기 대치상태를 이어 나갔습니다. 특히 냉전의 여파는 전쟁 뿐 아니라 기술경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프르쿠니크 1호를 발사하자 충격을 받은 미국이 이에 맞춰 우주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충합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소련의 이념전쟁은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을 낳기도 했는데요. 미국 위스콘신 주 상원이었던 J.R 매커시의 주장으로 시작된 반(反) 공산주의 열풍은 초창기에는 미국을 수호하는 애국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졌으나, 후에 마녀사냥으로 모습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1950년대는 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는데요. 그동안 목소리를 숨겨왔던 흑인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1951년, 린다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딸을 둔 올리버 브라운 목사가 흑인 자녀들이 백인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청원을 냈고, 연방대법원은 1954년 이를 수용했습니다. 또한 1955년 흑인 여성이었던 로사 파크가 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좌석 양보하는 것을 거절했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유명한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민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미국의 증권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소비재 소비가 늘고 경기 회복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미국은 장기 랠리 국면에 접어듭니다. 특히 군수산업들은 큰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냉전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이 동맹국을 확보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면서 호황을 맞은 군수산업체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들의 성장률은 엄청나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1월 대중연설에서 이들의 성장세에 대해 언급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군수기업의 성장은 이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미국 주식시장에서 M&A(인수합병) 역시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들의 가치가 실제 주식의 가치보다 낮은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저평가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인수, 합병이 더욱 더 속도를 내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미국 1950년대 활황장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로 시장에서 천대받던 직업 중 하나였던 주식중개인도 장기 랠리를 타고 시장에서 우대받는 직업으로 다시 복귀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형 금융백화점이 곳곳에 설립되어 주식 중개 뿐 아니라 펀드 등의 상품을 판매하며 인기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증시 활황과 함께 뮤추얼펀드 역시 큰 규모로 성장합니다. 195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의 금융재산 비중에서 뮤추얼펀드가 현물주식의 비중을 넘어서게 됩니다. 즉, 현물 주식에 부담을 느끼거나 그에 투자할 만큼 자금에 여유가 없었던 투자자와 가계를 중심으로 뮤추얼펀드 열풍이 불었던 것인데요. 이처럼 1953년에는 국제 뮤추얼펀드가 설립되면서 펀드 시장이 대중의 주식투자를 선도하는 매체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됩니다.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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