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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검은 목요일, 세계 대공황으로 확산되다!
(2017년 07월 기사)

미국의 검은 목요일, 세계 대공황으로 확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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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07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벌써 7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쏟아지는 햇빛을 피해 시원한 실내에서, 저와 함께 재미난 투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번에는 1929년 블랙먼데이 그리고 주식 시장의 붕괴로 촉발된 세계적인 대공황이 어떻게 전 세계에 영향을 퍼져 나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주식시장의 붕괴 속에서

미국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미국은 본격적으로 경제회복을 위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물론 순탄한 여정이 계속된 것은 아니었으며 많은 반발도 있었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뚝심 있게 그의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이를 위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에 지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과의 대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국민 및 야당과의 협력을 구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뉴딜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는 법을 기반으로 한 1차 뉴딜과 재정정책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2차 뉴딜로 펼쳐집니다.

금색 동전 사진

먼저, 미국은 금본위제도를 포기하는 대신 달러의 가치를 평가 절하해서 통화량을 늘리는 한편, 이자율을 감소시켜 경기호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합니다. 다음으로, 1933년 글라스-스티걸(Glass-Steagall) 법을 통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해 은행들이 증권업, 보험업 등을 겸업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제재합니다. 이것이 은행의 재정 건전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은행법을 통해 예금자보호제도를 정착시킵니다. 또한 NIRA를 통해 독점금지법을 2년간 정지하고 카르텔을 일부 허용하는 한편 농업조정법을 통해 농산물이 과다 생산되는 것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오코이 댐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ko.wikipedia.org/)

2차 뉴딜은 주로 재정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적극적인 공공근로 사업 및 구호정책이 시행되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33년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ennessee Valley Authority, TVA)의 설립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테네시강 유역의 지류를 따라 댐을 건설하고 이를 통해 홍수 등의 재해를 예방하고 전력을 생산하는 데 목적을 두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이 사업에 참여한 주만 해도 7개 주에 달했으며, 당시 정부기관인 TVA의 설립을 두고 위헌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전력 공급이라는 면에서 사설 발전업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 거대한 사업은 성공리에 마무리가 돼 테네시강 유역은 수십억 마일의 물동이 운반되는 수송로이자 발전소, 휴양지로 급부상합니다.

하지만 뉴딜 정책이 과연 대공황을 100% 극복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엇갈립니다. 실제 학자들 중에서도 뉴딜정책은 미국의 경기를 근본적으로 부양한 것은 아니었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의 대공황을 해결하게 해주었던 것은 바로 '전쟁'이었다고 말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의 등장이 주식 시장에서 시작된 미국의 불황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지요.

대공황 속 혼돈의 유럽

미국의 대공황은 유럽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전 세계적인 대공황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존에 유지하려고 했던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경제블록을 통한 보호무역주의로 나아갔고 몇몇 국가는 국가주의로 전환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건물 앞 수많은 사람들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ko.wikipedia.org/)

미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비엔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대형 은행인 크레디탄슈탈트(Creditanstalt)이 파산했고, 곧이어 이에 영향을 독일의 대형은행 다나트방크(Danatbank)이 쓰러지며 대규모 신용위기가 닥칩니다. 뱅크런이 이어지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가운데 너나없이 전후경제에서 막 회복 중이던 유럽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이를 고정시키기 위한 금이 부족해짐에 따라 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했습니다. 실제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재정정책에 나선 국가들이 대공황에서 점차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이는 유럽뿐 아니라 막 성장하던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브라질의 경우 커피경제가 몰락하면서 군부정권이 들어서는 등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고, 일본의 경우에는 도쿄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가 폭락하고 600여 개의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로 전환하는 한편 금태환제도를 포기하는데, 여기서 파국적인 정치제도인 파시즘이 등장하게 됩니다.

대공황의 끝: 파시즘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
아우토반과 폴크스바겐

독일에서는 국가사회주의정당,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특유의 기존 국가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대공황을 돌파하기 시작합니다. 나치당은 정권을 잡자 마자 적극적인 경제개발 정책을 입안하는데요. 저임금 하에 ‘완전고용’과 강제징병을 통해서 패전국 독일에 만연하던 실업률을 낮추는 한편 자동차, 건설, 주택 건설 등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경제는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시작된 군비확충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히틀러와 나치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 중에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비틀'과 고속도로 '아우토반'입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1935년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건설하면서 독일 국민들이 차를 탈 수 있어야 생각했고, 이런 측면에서 페르나르도 포르쉐 박사에게 '적은 비용으로 구입이 가능하며, 연비가 좋고 5인 가족이 탑승 가능하면서,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개발을 요구했습니다.

포르쉐는 바로 미국의 포드를 방문, 당시 컨테이너 벨트 조립 시스템을 도입해 국민차라는 개념의 비틀을 생산했습니다. 이 비틀이 훗날 '폴크스바겐'이 되었지요. (실제로 독일어로 폴크스바겐은 'Volk(국민)'의 소유격 'Volks'와 'Wagen(자동차)'의 합성어입니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 대공황은 끝을 맺습니다. 이와 함께 세계의 주식시장의 역사 또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메인 사진 출처: ⓒRoger Hsu, filckr(https://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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