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절대주의 왕정시대, 유럽에는 두 개의 학파가 경제학계를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중상주의였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상업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적극적인 상업과 보호무역을 통해 금과 은을 축적하면 이렇게 모인 부가 국가에 힘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그래서 농업 및 토지개혁을 주장한 중농주의와 달리 이들은 화폐와 상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가 있었습니다. 중상주의자로 유명했던 그는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답니다. 일찍이 정치경제학을 배우던 그는 수리에 밝았고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은 쾌남이었는데 애정 문제로 결투를 벌였다 사람을 죽이고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구속된 사이를 틈타 그는 탈옥해 3년 간 유럽을 주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유럽의 국가들의 행정시스템과 금융시스템을 공부했고 화폐에 대한 몇 편의 논문을 내지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영국으로 복귀한 뒤 다시 14년 간 유럽을 떠돌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후견인이 될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작을 만나 친분을 다졌습니다.
한편,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이어 왕이 된 루이 15세는 그즈음 큰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태양왕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스스로를 국가라 칭했던 아버지 루이 14세가 과다한 전비 지출과 베르사유 궁전의 건설 등과 같은 호화스러운 생활로 국고를 바닥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이 15세는 일부러 화폐개혁을 통해 통화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부의 재정을 충당하려 했지만, 이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방식이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를레앙 공작의 후원 하에 존 로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잡게 됩니다.
존 로는 중앙은행을 두고 화폐를 다수 발행하면 금리가 낮아지고 경제활동이 활기를 띄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파탄에 이른 프랑스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존처럼 금이나 은을 주고 화폐를 교환하는 것이 아닌, 정부의 신용만으로 발행되는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즉, 현재 우리가 쓰는 화폐처럼 말이죠. 그는 1716년 방크 로얄(Banque Royale)를 설립하고 이듬해 1717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합니다.
그 당시 미시시피 회사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 주의 교역권과 개발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시시피 회사의 합병으로 인해 존 로는 엄청난 대형 법인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남해회사처럼 실적이 보잘 것 없었지만, 존 로는 이를 화려한 마케팅과 광고로 치장해 회사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이와 함께, 식민지 금광 개발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미시시피 회사의 가치는 치솟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존 로는 사람들을 모아 광부 복장을 하게하고 파리 시내를 행진하게 하는 등 식민지 광산 사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남해회사 때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국채를 회사에 납부하고 주식을 교환받거나 존 로가 발행한 종이화폐를 빌려 주식을 사며 투자에 나섰습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 정부는 쌓였던 국채 상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방크로얄을 통해 금(종이화폐의 교환대가)이 유입되면서 국고상황은 개선되어갔습니다.
하지만 버블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500 리브로(당시 프랑스 화폐 단위)에서 1만 5천 리브로까지 상승했던 미시시피 주식 역시 폭락을 시작했는데요. 존 로가 펼치고 있는 금광산업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콩티 왕자가 금과 은을 구하기 위해 미시시피 주식을 처분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투자자들은 투매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주식을 금으로 바꾸는 열풍이 계속되자 방크로얄의 잔고 역시 바닥을 드러냈고, 결국 미시시피 회사 역시 파산하게 됩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의 분노는 정부로 향했고, 미시시피 회사와 방크로얄의 경영자인 존 로를 사형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존 로는 영국으로 피신하고 베네치아에서 쓸쓸히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미시시피 회사의 몰락 이후에도 프랑스는 미시시피 회사와 방크로얄이 찍어낸 막대한 돈으로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150년 간 주식회사 설립이 금지되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존 로의 방크로얄로 인해 프랑스의 은행들은 국립은행인 방크 드 프랑스를 빼고 '방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투자자들에게 많은 아픔과 교훈을 준 이 버블은 주식시장의 발달을 늦췄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 산업혁명 시기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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