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만님의 댓글
김봉만좋은정보네요
오늘날의 브릭스(BRICS) 국가들처럼 당시 미국은 떠오르는 시장, 즉 이머징 마켓이었습니다. 인구 대부분이 유럽 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로 이뤄진 미국은 풍부한 자원과 인력, 기계화를 바탕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잠깐! '브릭스(BRICS) 국가'란?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는 브라질(B)·러시아(R)·인도(I)·중국(C)·남아프리카공화국(S)의 신흥경제 5개국을 지칭하는 신조어입니다.
2003년 10월 BRICs의 성장가능성을 제시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인 '브릭스와 함께 꿈을(Dreaming with BRICs)'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은 옛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정형화된 증권거래소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거래의 형식이나 수수료 등이 표준화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큰 불편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1792년에 첫 증권거래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많이 아는 뉴욕거래소(NYSE)의 태동입니다.
1792년, 증권 중개업자와 상인 24명이 월가 68번지에 모여 증권거래법 및 수수료에 대해 협정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68번지에 위치하고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미국의 증권거래소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1861년 4월 미국에서는 예기치 못한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노예제의 존속 여부를 두고 남부와 북부 주들이 갈등을 빚던 끝에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 주들이 합중국에서의 독립을 선언하고 연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남북전쟁(The Civil War)의 막이 오릅니다.
사실 남북전쟁은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비조달을 위해 미국 정부는 8,000만 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합니다. 국채 발행에 은행, 보험사 등이 활발히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증권 거래는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전후 복구와 산업 재개가 시작되면서 증권시장 역시 또 다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요즘은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통해 주식 시세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만해도 증권사 지점 창구에는 주식 종목과 가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시세판이 있었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증권사'하면 시세판을 떠올릴 정도로 추억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1867년 에드워드 켈레번에 의해 발명된 티커(Ticker) 테이프는 곧바로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에서 기본적인 가격 변동을 틱(Tick)이라고 표현하고 증권사 홈페이지 및 HTS에서 따로 종목별 가격이 나오는 화면을 티커(Ticker)라고 부르지요? 그 용어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위 티커(Ticker) 테이프에서 알파벳으로 표기된 이름은 대표 기업들의 코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S는 미국의 The American Sugar Refining Company, U는 Union percifie을 의미합니다. 그 아래 기호는 호가의 수준과 거래량을 표시합니다.
에드워드 켈러번의 티커기는 분당 900자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획기적인 물건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실제 발명자였던 에드워드 켈레반 역시 10만 불을 받고 특허를 판매했으나 당시 고장이 잦아 거래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당시 뉴욕거래소 보일러실에 살던 청년 에디슨이 이를 개량하게 되는데, 그 결과 그는 4만 달러의 보상금을 타고 발명가로서의 명성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이렇듯, 1900년대 초가 되었을 때 미국은 강력하게 구축된 산업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증권시장 역시 꾸준히 발달하기 시작했지요. 다음에는 미국의 1900년대 호황기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 주실 거죠? 그리고 열화와 같은 댓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은정보네요
유익한 정보 많이 알려 주세요-
재미있은 금융의 역사공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내용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