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가 있었던 1997년에는 1월, 한보사태가 있었습니다. 한보그룹은 당시 국내 재계순위로만 따지면 14위에 달하는 거대한 기업이었는데, '세계 5위 내 규모를 자랑하는 제철소'를 짓는다는 것을 목표로 제철 사업을 투자하다 그 규모가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합니다. 즉, 과잉투자가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 등을 통해 무리한 대출을 받던 중 1997년 1월, 한보는 결국 부도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그룹 부도 사태가 이어집니다. 1997년 삼미그룹이 부도를 선언하고 그 해 4월 한보 사태에 대한 청문회가 열립니다. 1997년 역시 무리한 사업을 벌이던 진로 그룹이 부도사태를 맞고 5월에는 대농그룹, 6월에는 한신공영그룹이 부도를 선언합니다. 1997년 7월에는 기아자동차그룹이 융자 지원을 요청하는데요. 이 때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 위기가 시작되면서 산업은행 차입금리가 LIBOR+1% 포인트를 상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종금사들이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지요.
기업들의 부실화가 계속되면서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바로 종합금융사(종금사)였습니다. 종금사의 경우 CP나 어음 매매를 통한 신용 대출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는데요. 문제는 대기업들의 부실화로 자금 회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종금사들도 문제가 발생하고 전체적으로 자금시장이 경색화되는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원은 3억불 규모의 종금사 자금 지원을 8월 15일에 검토할 정도였습니다.
한편, 위기가 심화되면서 정부 당국도 1997년 8월 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9월 우리나라 은행들의 장기차입 관련 신용등급을 낮춘 무디스의 방한이 협의됩니다.
9월, 이미 동남아시아 금융위기가 시작된 가운데 동남아시아와 유사한 외환구조를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10일, 산업은행은 외환 자금 확보를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외환채권 발행에 나선 가운데 먼저 부도를 맞은 진로그룹에 대한 법정관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9월 29일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상승, 964원을 기록하고 10월 쌍방울 그룹이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 때 맞춰서 처음으로 IMF 조사단이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시장을 살펴보았습니다. 10월의 홍콩 증시가 크게 하락한 가운데, 협조 융자를 신청했던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를 받게 됩니다.
10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와 무디3스가 나란히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미국 S&P사, 대한민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장기 AA-에서 A+, 단기는 A1+는 A1로 강등합니다. 그 이후, 10월 27일 무디스 역시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하향합니다. 장기 국가 신용등급을 A1에서 A2, 단기는 P1에서 P2로 강등시키지요. 10월 28일, 모건스탠리 등에서 '아시아를 떠나라' 하는 보고서가 발간되며 주가가 500을 하회하는 가운데, 10월 30일 또 다시 외환이 급등하며 8분 만에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11월 1일엔 해태 그룹이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미 해외 언론 등에서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11월 4일 뉴코아 그룹이 부도를 맞이한 가운데 블룸버그 등은 '우리나라의 가용 외환보유고가 20억 달러' 수준이라고 발표했습니다.
11월 6일, 이미 한국은행 등은 우리나라가 IMF 등으로부터 외화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11월 7일, 주가가 크게 폭락하고 10일 환율이 1,000원대를 돌파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극비리에 IMF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11월 16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극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21일에 드디어 우리나라는 외화차입 완전 불가능을 선언하며 IMF에 자금을 요청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12월 3일, 미쉘 캉드쉬 총재가 우리나라를 재방문하여 임창렬 재경부장관과 공식적인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 대기성 차관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12월 4일, 대기성차관협약(Stand-By Arrangement)엔 총 210억 달러를 지원받기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1997년 IMF 위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지난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동남아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와 국내 자체적인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IMF 금융위기 사태를 마지막으로 다루며 그 원인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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