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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혼란과 안정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시작
(2018년 07월 기사)

월스트리트의 혼란과 안정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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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7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오늘은 1990년대 초 월스트리트와 미국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시 대통령(George Herbert Walker Bush)의 공화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1990년대로 잠깐 돌아가 볼까요?

1980년대 풍운아 '마이클 밀켄'의 등장과 몰락

상승장을 이어가던 1980년대 미국 시장의 이슈 중 하나는 정크본드(투기 등급의 채권)의 황제로 이름을 날렸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의 구속이었습니다. 타고난 워커홀릭으로 노력, 근성을 갖췄던 마이클 밀켄은 일찍이 투기 등급을 가진 정크본드에 집중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특히, 그가 있었던 드랙셀 번햄 램버트 증권사가 5대 증권사에 진입할 정도로 큰 공헌을 했지요. 그는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정크본드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MBA 재학 시절 정크본드의 신용도가 의외로 우량채권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마이클 밀켄 사진 사진 출처: mikemilken 홈페이지(http://www.mikemilken.com)

타고난 노력가였던 마이클 밀켄은 버버리힐스에 자신의 사무실을 개소하고 정력적으로 정크본드를 중개 및 판매했습니다. 그가 월스트리트, 뉴욕이 아닌 버버리힐스에 사무실을 차린 이유는 뉴욕보다 버버리힐스가 3시간 빠르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만큼 그는 남들보다 늘 일찍 일어나 스스로 '무너진 천사(Fallen Angel)'라 불렀던 정크본드 중개와 매매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마이클 밀켄 사진 사진 출처: mikemilken 홈페이지(http://www.mikemilken.com)

정크본드로 인해 큰 명성을 얻게 된 밀켄은 LBO 거래에 나섰습니다. LBO란 인수 합병을 원하는 기업이 피합병 기업의 재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 발행된 채권으로 모인 자금으로 인수를 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당시 밀켄은 월스트리트 최고의 기업사냥꾼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반 보스키(Ivan boesky)와 손을 잡고 LBO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업의 내부정보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올리는 부정거래를 했던 것인데요. 당시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증권거래위(SEC)는 1984년에 이반 보스키를 기소하게 됩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것은 후일 뉴욕시장의 자리에 오른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II)였습니다. 당시 월가의 저승사자로 통했던 줄리아니는 이 스캔들을 밝혀냈는데 이 과정에 서 보스키는 감형을 받기 위해 밀켄과의 거래정보를 넘겨 마이클 밀켄도 기소됩니다.

한 때 정크본드와 LBO를 이용한 M&A 돌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밀켄은 1988년 징역 2년에 벌금 1억 달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작은 지방의 증권사였으나, 한 때 거대 증권사로 성장한 드랙셀 번햄 램버트 사는 6억 5천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고 파산하고 맙니다. 언론은 이를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었던 워터게이트(Watergate)에 빗대 월 게이트(Wallgate)라고 불렀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를 모델로해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요. 바로 이것이 <월 스트리트(Wallstreet)> 시리즈 입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Wallstreet) 스틸컷 사진 출처: Daum 영화(http://movie.daum.net)

여기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기업사냥꾼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 분)와 증권사 직원 버드(찰리 쉰)는 각각 이반 보스키와 마이클 밀켄에게서 그 이미지를 따왔는데요. 극 중 게코의 대사인 "탐욕은 선(Greed is good)"은 실제 이반 보스키의 대학 강연 내용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시장의 진정과 1992년 대통령 선거

정크본드와 LBO의 황태자였던 마이클 밀켄, 기업사냥꾼으로 M&A 붐을 창조한 이반 보스키의 몰락으로 뉴욕 투자은행들도 얼어붙었지만 다시 회복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저축은행대부조합의 파산도 있었지만 말이지요.

우선 기존 조지 허버트 대통령은 몇몇 공화당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며 재선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에 맞서는 후보는 아킨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이었습니다. 그는 주지사를 무려 세 차례나 계속하며 환경정책, 흑인정책 등으로 세를 불려가던 민주당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부통령으로 엘 고어를 지목하며 대선 캠페인을 준비합니다.

4president 사진 사진 출처: 4president(http://www.4president.org)
조지 허버트와 빌클린턴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한편, 1992년에서는 제 3 후보가 급작스럽게 등장하였는데요. 바로 로스 페로(Ross Perot)였습니다. 텍사스 출신으로 일찍이 정보처리를 주업으로 하는 기업인 일레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을 설립해 자수성가한 로스 페로는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미국에서는 26대 테어도어 루스벨트가 공화당 공천 관련 문제로 탈당해 제 3 후보로 나선 이후로 유력한 제 3 후보여서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냉전이 붕괴되고 부시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억제로 인한 불경기로 민심이 이반된 상황이라 신선한 제 3 후보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편, 클린턴은 젊은 이미지와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을 통해 미국 경제를 혁신시키겠다고 약속해 어필했고 주요한 슬로건이었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즉,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내세우며 당선에 성공하는데요. 공화당은 제 3후보였던 로스 페로의 등장으로 표가 분산된 데다 감세 정책을 주장한 부시에 대한 호응도가 떨어져서 재선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는 1990년대 클린턴 시기의 미국 증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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