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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발전상은?
(2018년 02월 기사)

1960년대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발전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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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2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저번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인 해방 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습과 58년 국채파동 이야기, 재미있으셨는지요. 이제 오늘은 1960년대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4.19 혁명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윤보선-장면이 이끄는 민주당 내각이 출범합니다. 하지만 곧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계속되면서 군사정권이 출범하게 됩니다.

1950년대 역시 증권시장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대한증권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증권업자들이 대한증권거래소 주식을 매점하려는 시도로 촉발된 증권파동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대한증권거래소의 상장을 두고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이후 대한증권거래소 주식에 대한 수도결제 거부가 이뤄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격동과 소요가 많았던 시기기도 합니다.

주식이 대세를 형성하다

앞서 1950년대에서 증권이 곧 채권으로 통하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조금씩 주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소위 '명동시대'로 통하던 거래소에서 초기 상장된 기업은 12개 종목입니다. 조흥은행, 상업은행, 저축은행, 흥업은행,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 등 총 12개가 초기 거래 대상 종목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장된 기업은 조흥은행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은행이라고 하면 다들 '조상제한서(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은행)'를 떠올릴 정도였지요. 그중 맏형이었던 조흥은행은 가장 큰 세력을 자랑했지만, 1997년 IMF의 거센 파고를 버티지 못하고 신한은행에 합병되었습니다. 실제로 위의 주식회사 중 경성방직(경방), 경성전기(한전) 등은 현재도 남아있으나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https://www.flickr.com)

초기의 기업 상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편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정부에 기업들을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인들이 많아 초기 상장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실제로 거래종목의 증가율은 저조했습니다. 1963년에도 고작 15개 정도가 거래 가능했지요.

1970년대 증권 거래의 모습은?

그렇다면 1960년대 증권거래 방식은 어떠했을까요? 우선, 증권거래소 곳곳에 설치된 매매대에서 호가표에 매매 수량과 금액을 적어내면, 체결된 거래 정보는 중앙게시판에 있는 직원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면 중앙게시판에 있는 직원이 이를 분필로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이런 방식 때문에 거래가 1시간 이상 지체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는 1979년 2월 전산시스템이 거래소에 도입되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박정희 정부 이후 경제계획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고 경제 성장과 함께 정부의 증시 독려책이 효과를 내면서부터 조금씩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1968년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들의 상장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1968년 기업의 수는 34개, 이후 1970년대에는 세 자리 수가 넘는 기업들이 거래소에 상장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0년, 우리나라 증시는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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