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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습은?
(2018년 01월 기사)

- 대한증권거래소의 탄생과 58년 국채파동 -

해방 이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습은? - 대한증권거래소의 탄생과 58년 국채파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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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01월 기사)
기고: 디지털서비스팀 권형우 매니저
안녕하세요? 2018년 무술년 황금 개띠의 해가 밝았습니다. 올해에도 투자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 및 임직원 분들의 많은 응원과 화답 부탁드립니다. 자, 2018년 첫 시간인 오늘은 해방 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습과 58년 국채파동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해방 초창기와 건국국채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미 군정은 군정명령 43호를 내려 증권시장의 폐쇄를 명령합니다. 이에 한동안 증권 거래가 뚝 끊겨버렸습니다. 비록 거래소는 사라져버렸지만, 명동 주변에서 장외의 형태로 주식 거래가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1948년, 우리나라의 정부 수입과 함께 다시 증권시장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1949년에 대한증권주식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시위 운동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하지만 당시 증권거래소의 기능은 오늘날과 같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때 가장 많이 거래되었던 것은 건국국채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정부 운영에 드는 자금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건국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국가를 운영하는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전쟁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문제는 1950년대에 발발한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심화되자, 이승만 정부는 건국국채를 무제한으로 찍어내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건국국채는 애국국채라고 이름이 바뀌어 판매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애국국채는 딱히 투자 메리트가 있는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고 물자가 부족해져 물가는 치솟는데, 애국국채의 금리는 고작 연 5%대 수준이었으니 투자자들에게 딱히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이기는 어려웠겠지요.

정상적으로 국채를 사려는 사람들이 손에 꼽힐 정도가 되자, 대한민국 정부는 전시동안 애국국채를 강매하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즉, 각종 인허가나 통관이 필요할 때 반드시 일정 이상의 애국국채를 매집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소화되던 애국국채였지만 워낙 그 가치가 형편이 없었던 지라 벽이나 문풍지의 보수에 사용되기까지 했다네요.

건국국채의 부활

1955년, 6.25 전쟁이 종결됩니다. 사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건국국채는 다시 재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 당시 '증권=건국국채'를 의미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당시 주식은 비록 상장은 되어 있었으나 그 영향력은 실로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955년 전체 거래소의 거래량 중 94%가 국채였습니다.

전쟁 중 기차 폭파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1956년 1월 16일, 거의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던 건국국채가 조금씩 그 가치를 회복할 무렵, 당시 증권거래소를 뒤흔들었던 1.16 국채파동이 시작됩니다.

1.16 국채파동과 그 여파

1950년 100원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

1957년, 대한민국 재무부는 두 개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첫 안은 제 11회 국채 발행안으로 180억 환을 발행하겠다는 국회 동의안, 두 번째 안은 외환특별세법의 통과안이었습니다. 그 중 외환특별세법은 시행 시 세수 증가가 153억 환이나 된다는 것으로 계산된 법령이었습니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외환특별세법과 11회 국채 발행안의 동시 통과가 어렵다는 의견과 그래도 발행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이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만약 국채가 발행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신규로 공급되는 국채의 양이 줄어들면서 국채의 희소성이 올라가게 됩니다. 즉, '희소성=가격'이라는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국채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가격이 오르게 되지요. 이를 예상하고 매집하느냐, 아니면 국채가 발행되면 반대로 국채의 수익률이 상승하고 가격이 하락하므로 이를 예상하여 매도하느냐, 하는 두 세력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두 세력이 매집과 매도를 벌이는 가운데 정부는 국채 미발행을 지시합니다. 이에 매수 세력은 무려 2~3배의 매매차익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큰 손실을 보게 된 국채 매도세력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정부에 탄원해 국채 발행계획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장에는 가장매매와 투기, 거짓정보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결국 정부는 극약처방을 내리게 됩니다. 1958년 1월 16일 부로 있었던 국채 매매분을 전부 무효로 처리해버린 것입니다. 1월 20일부터 국채 거래가 다시 재개되고 국채파동을 수습하기 위해, 증권업협회를 중심으로 사태수습대책위가 열렸지만 이번 거래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달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국채 거래는 점차 쇠퇴하게 되고 증권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결국 훗날 1.16 국채파동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거품 사건으로 기록되고 맙니다.

댓글목록

염종문님의 댓글

염종문

올한해도 대박나세요 저도 올해 열심히 투자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