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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는?
(2020년 01월 기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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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01월 기사)
기고: IT기획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최근 브렉시트와 관련해 다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금융위기만큼의 충격을 줄 것이냐, 아니면 일시적인 악재에 그칠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에서 2008년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을 보면 어떨까요?

위기의 전조

한 동안 저금리 정책을 구사하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2004년부터 금리 인상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는 경기가 생각보다 많이 호전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999년 이후 5년 가량 금리를 인상시키지 않았고, 5년 만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아니 금융위기는 2008년 발생했는데 왜 2004년 금리 인상 이야기가 왜 튀어나오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위기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그래프 화살표가 상한선을 부시는 사진

2004년 6월 첫 금리를 인상한 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년 동안 금리를 0.25%씩 17차례에 걸쳐 꾸준히 인상합니다. 이에 따라 2006년에는 금리 수준이 5.25%까지 상승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후 기준금리 인상이 다시 멈춥니다.

금리가 1%대에서 5%까지 상승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도 역시 상승했습니다. 문제는 서브프라임 대출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인데, 이들에 대한 대출금리 역시 상승하면서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때문에 연체율도 증가하고, 대출 금리가 상승하면서 장기 담보대출인 모기지에 대한 수요도 이전보다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동안 모기지론으로 큰 수익을 창출했던 모기지 대출회사들과 은행, 투자은행들이었습니다.

모기지회사와 MBS

모기지회사들은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가장 큰 주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입니다. 1990년대부터 클린턴 행정부는 '가난한 사람들도 집을 갖게 하자'는 생각에(당시 미국의 주택 보급률은 6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독려했습니다.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이 모기지 회사들과 리먼 브라더스 증권입니다. 물론 은행이나 증권사들도 후기에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초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대한 은행들의 관심은 미미했습니다. 대출 회수에 대한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달러 위에 주택 모형이 올려진 사진

이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최소 10년 가량이 넘어가는 장기 대출 상품입니다. 때문에 모기지 회사들은 MBS라는 증권을 만들어 대출을 유동화시키게 됩니다. 보통 회계상으로 은행이나 모기지 회사들이 대출을 해준 것은 '자산'으로 분류합니다. 문제는 이게 말이 자산이지, 대출이 회수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이 자산을 현금화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MBS는 쓸 수 없는 장기 대출을 유동화 하여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과 같은 상품이었습니다. MBS를 만들려고 하는 회사는 대출을 매입한 뒤 이 대출을 담보로 다시 증권을 만들고, 이 증권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합니다. 투자자들은 증권을 사는 대가로 가격을 지급하고, 원래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은 이 MBS를 산 투자자들에게 넘겨집니다. 그 과정에서 모기지 회사들과 은행들은 자금을 얻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부동산 열기와 함께 번성하게 되는데, 2006년까지만 해도 이 모기지 시장은 여전히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대표 주자였던 Fannie Mae와 Freddie Mae는 2,500억 달러의 모기지 채권을 발행했고,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투자은행과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모기지 채권 잔액도 1조 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공격적인 모기지 시장 영업을 보인 리먼 브라더스

특히 모기지 회사들과 함께 시장에서 주목받은 회사는 리먼 브라더스(LehmanBrothers)였습니다. 공격적인 모기지 시장 영업을 보인 리먼 브라더스는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을 뽑자면 골드만삭스,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가 언급되었습니다. 여기에 베어스턴스까지 더하면 당시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이 됩니다.

리먼 브라더스 회사 전경 사진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리먼 브라더스는 독일 이민자 출신인 리먼 형제가 세운 금융회사입니다. 1844년, 소상인이었던 리먼 형제의 장남, 23세의 헨리 리먼은 남부 알리배마에서 'H. Lehman'이라는 작은 회사를 세웠습니다. 3년 뒤 그의 동생 엠마뉴엘 리먼이 합류하면서 이름을 'H. Lehman and Bro'로 바꿨고, 막내였던 메이어 리먼이 뒤이어 사업에 합류, 'Lehman Brothers'라는 이름을 쓰게 됩니다.

메이어 리먼이 합류한 이후 이들은 새로운 사업을 시행합니다. 바로 목화중개업으로 당시 목화는 남부 지역의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습니다. 이들은 목화중개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1855년 장남이었던 헨리 리먼이 황열로 사망하는 불운에도 불구, 엠마뉴엘과 메이어 리먼은 형의 유지를 이어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시킵니다. 이들은 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뉴욕 목화 거래소의 설립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이후 리먼브라더스는 1883년부터 커피 교역에도 진출하고, 1899년 국제 증기 펌프 회사(International Steam Pump Company)의 기업 공개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증권업에 진출합니다.

한때 이들은 사내 권력 투쟁 문제가 불거지며 어려움을 겪어 1980년대에는 당시 금융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인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독립했고 사세를 키우며 세계 4대 투자은행의 하나로 성장합니다. 리먼 브라더스는 투자은행이었던 만큼 증권업, 채권 매매, M&A 등 여러 업무를 했지만 부동산 관련 영업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특히 1993년부터 CEO의 자리에 오른 뒤 2000년 그룹 회장이 된 리처드 풀드 회장은 부동산 영업을 적극 확장해 MBS 시장에 뛰어듭니다. 때마침 부동산 붐이 일면서 풀드 회장의 전략은 적중했고, 리먼은 부동산 관련 금융업을 더욱 확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풀드 회장은 리먼 브라더스 내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획득합니다. 그는 2000년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회장직에 오른 뒤, 자신의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요직에 전문가를 배제하고 해당 업무에 초보자를 앉힙니다. 실제로 리먼 브라더스의 최고 재무책임자(CFO)에 오른 에린 캘런과 이언 로위트는 재무 분야의 문외한이었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회사원들 사진

이런 폴드 회장의 철권 통치는 2000년대에도 이어졌고, 2006년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매각할 때도 풀드 회장은 반대로 이 채권들을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2007년 몇몇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중을 축소할 때 역시 풀드 회장은 오히려 '이것이 투자의 적기'라고 판단합니다. 이 판단은 후에 이사진들의 반대로 철회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한편 리먼 브라더스와 같이 오판을 내린 회사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증권업계 5위였던 베어스턴스였는데, 이들 역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꾸준히 비중을 늘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곧 비극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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