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벤 버냉키 의장 퇴임에 따른 "새로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쏠려 있었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은 2013년 "2기 임기를 끝으로 퇴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고, 미국 및 여러 나라들의 중앙은행총재, 석학들이 모이는 '잭슨홀 미팅'에도 불참해 사실상 퇴임이 확실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여론이 굳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론은 누가 차기 '세계의 경제대통령' FRB 의장이 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당시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벤 버냉키 의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재닛 옐런 부의장,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을 맡고 있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이었습니다.
둘 다 차기 FRB 의장에 어울리는 경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먼저 재닛 옐런 의장은 만약 FRB 의장이 된다면 역사상 '첫 여성의장'이 된다는 의미가 있었고, 벤 버냉키 의장의 이해자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UC 버클리 석좌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옐런 부의장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정보 비대칭성에 대해 명쾌히 설명한 '레몬시장 이론(Market for Lemons)'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석학입니다.
그에 맞서는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옐런 의장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경제학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삼촌들과 토론을 즐기고 미국 메이저리그 팀의 승률을 바탕으로 우승을 예측하는 '서머스상용로그함수'를 11세에 만들 정도의 괴짜였습니다. 원래 하버드를 지망했지만 입학에 실패한 그는 16세에 메사추세츠 공대(MIT)에 입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인 24세에 모교였던 MIT에 교수로 임용됐고, 28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종신교수 자리에 올랐으며,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엄친아였습니다.
아울러 노벨경제학상에 준하는 권위를 가진 '존베이츠 클라크 메달(중요한 경제학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상으로, 수학의 필즈상처럼 나이 제한이 있어 만 40세 미만만 수상 가능)'을 1993년 수상했으며,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무차관과 재무장관을 각각 역임한 바 있었습니다.
옐런이냐 서머스냐를 두고 여론은 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천재이자 관료로서도 재능을 보인 서머스를 지지한 반면, 경제학계와 벤 버냉키 의장은 옐런 부의장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특히 경제학계는 서머스가 차기 FRB 의장이 되는데 반대가 심했습니다. 2013년 9월 미국 여성정책연구소가 서머스를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자 이에 35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찬성 서명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서명을 남긴 사람들 중에는 노벨경제학자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등 누구나 알만한 학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주류 경제학계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를 바탕으로 FRB 의장 자리를 노리고 있던 로렌스 서머스는 후보자 자리를 자진해서 포기합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재닛 옐런 의장이 후임으로 공식적으로 지명받아 FRB 의장에 취임, 지금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한 때 '미국 경제를 이끌 천재'로 추앙 받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오히려 자신의 본원이라 할 수 있던 경제학계에서 왜 철저히 외면 받았을까요? 하버드대 총장 재직 시절 "여성은 수학 능력이 떨어진다"는 여성 폄하 발언, 월스트리트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 재무장관 재직 시 특유의 까칠한 성격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크게 언급된 것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의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몇몇 의원들은 서머스가 '평생 규제 철폐론자'라며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글리스스티걸 법안을 폐지하는데 앞장서는 등 규제 철폐에 전력했고, 대표적으로 1998년 파생상품 규제안 도입을 막은 전례가 있었습니다.
1998년 미국은 행정 관료들이 대통령이 지명한 관료를 공격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집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이었던 브룩슬리 본이 파생상품 시장에 대해 만든 정책보고서를 두고 본 의장과 경제관료들 사이에 큰 갈등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브룩슬리 본 의장은 원래 클린턴 행정부 시절 법무장관으로 내정되었던 사람으로, 여성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법률계에서 높은 명성을 쌓았습니다. 일찍이 그녀를 눈 여겨 본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그녀를 차기 법무장관으로 내보내려 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브룩슬리 본은 비교적 한직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의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취임 후 그녀는 위원회 업무를 보다가 파생상품 시장에 아무런 규제가 없다는데 당황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파생상품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생상품 관련 규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형식은 '신고제'로 파생상품부서를 운용하는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해당 거래 내용과 위험 평가 내용을 자진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본 의장은 이런 관례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1998년 3월 상품선물거래서 정책보고서 초안을 통해 기존 파생상품 규제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파생상품 규제의 필요성과 해당 규제 업무를 상품선물거래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재무부 및 국회의원들과 공유합니다.
하지만 건설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그녀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특히 당시 재무부 차관이었던 서머스는 브룩슬리 본을 심하게 질책하고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취소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파생상품 규제안에 대한 소식을 들은 은행들이 이 내용이 실현될 경우, 규제가 없는 런던으로 파생상품 부서들을 옮겨버리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브룩슬리 본 의장이 보고서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출판하자,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과 차관 서머스, 증권거래위원회 아서 래빗 의장과 옐런 그리스펀 FRB 의장은 이에 분노, 정책보고서 출판을 중지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두고 청문회가 열렸는데, 행정부 관료들이 여당에서 임명한 관료를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결국 브룩슬리 본의 파생상품 규제안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본의 반대파 중 한 명인 옐런 그리스펀 FRB 의장이 의회를 설득하여,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6개월 간 파생상품을 규제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본 의장의 임기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법안을 다시 상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많은 경제관료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파생상품. 하지만 파생상품이 시장에 큰 충격을 준 사례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1996년 일본 스미토모 상사가 구리 선물에 손을 댔다가 큰 손실을 입었고 1994년 오렌지카운티 정부가 파생상품에 손을 냈다가 지방정부가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과도한 파생상품의 거래 증가는 다양한 신종 파생상품의 등장과 그 거래량을 늘리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실제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될 수 있었던 것은 부채담보부증권(CBO)라는 파생상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담으로 1998년 혹독한 비판을 들으며 클린턴 행정부 내 경제관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브룩슬리 본 의장은 2010년 4월 금융위기의 원인을 두고 일어난 의회의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석, 그녀의 파생상품 규제안을 제지했던 그린스펀 전 의장을 비판합니다.
아직도 많은 미국 사람들이 당시 본 의장이 진행했던 파생상품 규제안이 일부 통과가 됐더라면 2008년 금융위기가 이렇게 큰 파국을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후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도드프랭크법이 입안됐지만 아무래도 사후약방문이었습니다.
글리스스티걸 법안의 폐지와 파생상품 규제의 좌초. 그 외에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그린스펀 의장의 그림자'가 지적되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