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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양적완화를 꺼내 들다
(2020년 05월 기사)

벤 버냉키, 양적완화를 꺼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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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05월 기사)
기고: IT기획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지난호 칼럼은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11월 14일 취임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버냉키 의장에 대한 의문과 비판

먼저 미국 금융계와 정가에서는 벤 버냉키 의장의 재신임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은 제로 금리 수준의 금리 인하 정책을 발동하고 부실 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지원하며 경제위기 회복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계속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벤 버냉키 의장은 전임 대통령인 조지 부시가 임명한 데다 정치적으로도 공화당원입니다. 아울러 벤 버냉키 의장이 주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서도 공화당, 민주당 양쪽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월 스트리트 저널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해온 벤 버냉키의 성실성과 그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과연 그가 이 위기를 막을 만큼 신속하게 움직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평을 내렸고 대선에서도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버냉키 의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버냉키 의장이 좀 더 일찍 움직였다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냐는 여론이 존재했기 때문에 버냉키 의장도 오바마 정권에서 앞길을 장담할 수는 없는 처지였습니다.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벤 버냉키 의장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바로 2009년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길을 진화하기 위해 '2008양적완화'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란?

양적완화(QE)라는 개념이 근래에는 많이 사용되지만 2008년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한 개념이었고, 그 만큼 학계와 금융계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문에 양적완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 등이 화폐를 발행해 그 화폐로 국채나 민간의 채권(회사채, MBS 등)을 매입하여 시장에 적극적으로 통화량을 공급하는 정책입니다.
사실 이런 정책은 2008년 미국이 시행하기에 앞서, 일본 중앙은행(Bank of Japan)이 처음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소위 '잃어버린 10년'으로 알려진 장기 침체를 맞게 된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에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장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99년 2월 전격적으로 일본의 기준 금리를 0%로 인하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의 기준금리가 4~5%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찍부터 제로 금리 시대를 시작한 것입니다.
5달러가 발행되고 있는 사진
제로 금리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이 계속 되자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 무제한 통화량 팽창 정책을 꺼내 듭니다. 즉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그 돈으로 금융업체의 채권을 사들여 금융회사들에게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정책은 2006년 3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일본 국내에 한정된 것이라 전 세계적으로는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일본 경제를 부흥시키기보다 엉뚱한 방향으로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로 일본이 세계 시장의 '대출금고'로 변신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들이 세계 시장에 흘러 넘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은 금리가 0% 수준인데 다른 나라들은 4~5% 수준이니 일본에서 돈을 빌려서 선진국이나 이머징 시장에 투자해 차익을 얻자는 것, 이것이 엔 캐리 트레이드입니다. 일본의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공급되면서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졌고, 이것이 당시 2000년대 국제 금융 시장의 버블을 만드는데 일부 일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2008년 11월, 미국 양적완화의 시작

2008년 11월 25일, FED는 12월부터 1,000억 달러의 정부 보증기관 채권과 5,000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직접 매입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기존처럼 중앙은행이 이자율 조정 등 간접적으로 경기 조절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발권력을 발휘해 시장에 자금을 풀겠다는 것입니다.
양적완화를 아이콘 및 그래프로 간접적으로 표현한 그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쉽사리 안정되지 않자, 벤 버냉키 의장은 2009년 3월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합니다. 정부 보증기관의 채권을 750억 달러 추가 매입하고, MBS를 7,500억 달러 추가 매입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MBS의 경우 2009년까지 1조 2,500억 달러까지 추가 매입하겠다고 합니다.) 국채의 경우에는 2008년 9월까지 3,000억 달러 규모를 꾸준히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당시의 양적완화를 1차 양적완화, QE1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QE1은 침체되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경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의 재신임이 이뤄지다

2008년 8월, 미국 정가에서는 벤 버냉키 의장의 재신임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증시와 경제지표는 벤 버냉키 의장이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한 이후 일부 반등하고 있었으나, 벤 버냉키 의장에 대한 금융위기 책임론이 일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 8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벤 버냉키 의장의 연임을 공식 발표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벤 버냉키 의장이 단호한 행동과 유연한 사고 방식으로 금융위기를 단기간에 안정시켰으며, 어려운 결정들을 성공적으로 내렸다고 평가했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이 연임된 이유로는 우선 오바마 대통령의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양적완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며 적극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했다는 것이 가장 컸습니다. 우선 버냉키 의장이 리먼 브라더스를 구해내지 못하고 주택시장의 거품을 미리 예단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다음에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벤 버냉키 의장이 연설하는 사진 사진출처: ⓒFederalreserve,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한편으로는 당시 대안부재론도 있었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은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대공황 연구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입니다. 당시 벤 버냉키 의장을 대신할 인물로 꼽히던 재닛 옐런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후에 벤 버냉키를 이어 FRB 의장이 됩니다.), 앨런 블라인더 전 FRB 부의장,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대체자로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처럼 버냉키 의장을 바꿀 카드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벤 버냉키 의장이 진행한 양적완화는 언젠가 시장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이 반드시 필요한데, 벤 버냉키 의장만이 그 출구전략의 시점을 알 수 있으리라는 여론도 대안부재론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2008년 8월, 벤 버냉키 의장은 두 번째 임기를 보장받으며 다시 미국 경제의 부활을 위해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차 양적완화에 이은 2차 양적완화라는 카드로 미국 경기 재건을 위한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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