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2008년 9월, 공화당과 민주당 하원에서 합의된 구제금융 법안이 결렬되었다는 이야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구제금융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반발로 대규모 이탈표가 나오면서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 합의안이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이번호에서는 다시 구제금융 법안으로 돌아가 이 법안의 처리와 부시 행정부의 뒤를 이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야기를 꺼내고자 합니다.
하원에서 부결된 구제금융안을 위해 상원이 나서다
미국 하원이 구제금융안을 부결시키자 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2008년 9월 30일, 미국의 하루 단위 초단기
대출(Overnight) 금리는 무려 8%대로 치솟았습니다.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가 2%였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4배가 넘는 금리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것을 뜻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하원의 반란에 기업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한 푼이라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높은 금리로 자금 조달에 나섰던 것입니다.
금값이 크게 상승하고 유가가 10달러 이상 하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미국 정치권에서도
다시 구제금융안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미국 하원이 아니라 미국 상원에서 말이죠.
양원제로 구성된 미국은 두 개의 의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상원과 하원입니다. 잠깐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미국은 주마다 2명씩, 총 100명으로 구성된 상원과 인구수에 따른 선거구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하원이 있습니다. 2개의 의회가 있어서 양원제라고 합니다.
미국의 상원은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법을 만들거나 먼저 표결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주로 하원이 내놓은 법안에
대해 표결을 하거나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외적이라면, 외국 조약이나 군대 파병 등의 일은 상원에서 먼저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FTA나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송유관 건립 사업
계획(키스톤 XL 송유관 사업 계획)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국내 이슈인 ‘구제금융’ 관련 상원이 이례적으로 하원보다 먼저 안을 만들고 표결을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제금융안이 하원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그 후폭풍 등을 생각할 때 구제금융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경제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미국 정치권의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통과된 구제금융안
미국 상원은 기존 구제금융안에 대해 일부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첫 번째는 은행 예금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를 대폭 상향했습니다.
미국의 지급보증제도란 쉽게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 제도와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금을 보유한 미국인이라면 기존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까지 지급보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도를 대폭 상향했습니다.
지급보증한도는 사실 금융권의 요구라기보다는 미국 국민들의 요구였습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주식 및 부동산의
가치 하락으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 국민들에게 지급보증 한도를 대폭 인상하는 '당근'을 던져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원에서 구제금융 반대 이탈표 원인 대부분이 국민들의 반발이었던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두 번째도 비슷한 성격입니다. 수백만 명의 미국 중산층들에게 1년간 대체최저세(AMT)를 유예했습니다. 이 대체최저세란 쉽게 말해서
'부자세'로 1982년부터 시행된 유서 깊은 제도로 일정 금액의 소득금액에 부과되는 추가 세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전보다
지갑이 얇아진 중산층을 위한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권한으로 선물파생상품에 대해 시가 평가를 유예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미래의 가치를 사고
파는 선물의 경우, 하락장일 경우 현재 시점의 주가를 적용하게 되면(시가평가 방식) 투자자들이 장부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때문에 시가 평가 대신 만기 이후의 미래 예측가격을 장부상 평가 금액으로 기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파생상품 투자자들과
대형 금융회사들의 자금 경색을 보다 완화시키고자 했습니다.
미국 상원이 제시한 구제금융안은 2008년 10월 1일 신속하게 통과됐고,
바로 하원에서도 통과되며 결국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이 빛을 보게 됩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작
미국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 마지막으로 추진한 구제금융안은 결국 잘 마무리됐지만,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현재 레임덕에
빠져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던 때였을 겁니다. 특히 하원에서 나온 대규모 이탈표는 바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인 공화당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제금융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도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공화당은 역전의 용사로 알려진 존 매케인 후보가,
민주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후보가 치열한 선거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2019년 11월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52.9%의 표를 얻으며 7% 넘는 격차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제 44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사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유 중 하나는 금융위기에 대한 발 빠른 대처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오바마는 20~30초 TV 광고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경제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2분짜리 영상을 플로리다주에 방영하는 등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부각시켜
나갔습니다. 물론 매케인 후보도 경제 문제를 부각하는 광고를 뒤이어 내보내기도 했지만, AIG 보험 구제금융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타이밍을 놓친 부분이 있었습니다.
2008년 11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미국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업무를 수행하던 벤 버냉키 의장은 자신의 대공황 이론을 바탕으로 2009년 경제위기를 타파할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