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2007년, 모기지 회사들의 파산이 시작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게 됐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증권이 매각되는 등 유수의 금융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시 AIG의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AIG에게 위기가 찾아오다
2006년 회계부정 사태로 물러난 '보험계의 초인' 행크 그린버그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AIG의 몰락에는 신용 디폴트 스왑(CDS) 규정
개정이 있었다며, 그 개정이 일어난 것으로 AIG가 엄청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AIG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부실 채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해당 CDS 만기에 상관없이 CDS 증권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보험금을 지불해야 해서 제대로 대처할 시간 없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AIG의 자회사 AIG FP는 당시 약 4천억 달러가 넘는 CDS 상품을 판매했는데 2007년부터 점차 손실이 발생합니다.
2007년 AIG의 당기순이익은 62억 달러 흑자였지만 금융서비스 부분이 87억 달러 적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사실 AIG도 위기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7년 12월 CEO였던 설리반 회장이 직접 나서서 해당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설리반 회장의 호기
어린 이야기와 다르게 시장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2008년 5월 8일, 2007년 1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컨퍼런스 콜 자리에서 마틴 설리반 회장은 분기 손실로 78억 달러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를 밝혔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악의 분기 손실이 발생하면서 시장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었습니다.
AIG는 계속되는 시장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125억 달러를 별도로 조달하겠다고 밝혔지만, 'AIG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투자자의
의구심이 심화되면서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듭니다.
AIG,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다
2008년 9월 15일, AIG의 파산 우려가 커지며 시장이 공황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했던 벤 버냉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그 날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4시간 전 재무장관 행크 폴슨과 나는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몇 걸음 떨어진 창문이 없는 루스벨트 룸의
황갈색 가죽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뒷다리로 서 있는 말 위에 앉은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의 '의용 기병대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초상화가 벽 난로 위에 앉아 있었다. 행크와 내 앞에 놓인 윤이 나는 나무 테이블 건너편에는 당시의
백악관 주인인 조지 W.부시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부통령 딕 체니가 배석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보좌관들과
행크의 고위 참모들 및 다른 금융규제기관의 대표들이 테이블 둘레의 남은 10여개의 의자들을 채우고 있었다.
평소의 대통령은 회의에서 재치 있는 농담을 하거나 보좌관 한 사람을 악의 없이 놀려 곧잘 분위기를 가볍게 했다.
그날 오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소?"
2008년 9월 16일, FRB는 AIG 주식 79.9%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85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유례없는 정부의 구제금융 정책의 중심에는 벤 버냉키 의장이 서 있었습니다.
벤 버냉키의 대두
벤 버냉키 의장은 불과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교수로 활동하다 2006년 2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던 옐런 그린스펀 의장의 뒤를 이어 FRB 의장에 올랐습니다. 실제로 대학 입학을 위한 SAT시험에서 1600점 만점에
1590점을 기록하기도 했고, 1975년 하버드 경제학과 졸업 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한 수재였습니다. 버냉키 전 의장의
주요 연구 분야는 거시경제학, 그 중에서도 대공황과 신용 이론입니다.
그의 가족은 1921년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가족이 이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벤 버냉키는 어렸을 때 조부인 조나스 버냉키와 "미국같이 거대한 나라가 어떻게 대공황에 빠지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공황에 대해서
심도 있는 토론을 했었고, 이는 버냉키가 자신의 주 연구 분야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공황과 관련해서 벤 버냉키의 주요 이론은 '은행권 붕괴 이론'과 '금융 가속기 이론' 등이 있습니다. 은행권 붕괴 이론은 은행들의
부실이 가속화되면서 기업들이 투자뿐만 아니라 운영 자금 조달도 어려워지면서 공황이 심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금융활동의 둔화가
경제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금융 가속기 이론은 반대로 경제활동의 둔화가 금융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경제활동이
둔화되면서 사람들이 경제 및 금융 시스템에 대해 신뢰를 잃게 되고 디플레이션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서 금융활동이 위축됩니다.
결국 은행권 붕괴 이론과 금융 가속기 이론이 서로 맞물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침체가 계속됩니다.
대공황 외에도 벤 버냉키 의장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1991년 일본은 버블 경제를 경험한 뒤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장기 불황 사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벤 버냉키 의장은 당시 일본 중앙은행의 그릇된 통화정책이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고 분석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일본 중앙은행은 버블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을 했다가 급속도로 거품이 꺼지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 부양 정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주저하다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벤 버냉키는 이에 대해 위기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의 중요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과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던 벤 버냉키는 2006년, 무려 18년간이나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이사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의 후임 FRB 의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버냉키 의장에 대한 평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나, 노회하고 모호한 표현으로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앨런 그린스펀에
비해 유약하고, 대학교수 출신이라 시장과의 교감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2006년 4월에는 CNBC 앵커였던 마리아
바토로모에게 금리 인상 관련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비판을 받아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벤 버냉키 의장은 혼란에 빠진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후일 그를 상징하는 유명한 별명,
'헬리콥터 벤'으로 대표되는 양적완화 정책이 그것입니다. 2008년 9월 16일, 시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AIG에 대한 850억 달러 자금 지원을
시작으로 금융위기의 불길을 진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