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 정부가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할 정도로 급속하게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모양새입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모임 제한도 있어 힘드시겠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수 있게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에는 유로존의 탄생 배경 중 하나인 최적통화지역이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유로존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루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사실 유로존의 탄생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경제 외적인 이유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럽 통합이 어려운 이유
지금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속해 있고, 유로존 국가들은 단일 화폐인 유로화를 쓰고 있지만 옛날만 해도 하나의 유럽은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 제국이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위치한 이베리아와 프랑스 등이 위치한 갈리아 지역, 영국이 지배한 브리타니아 지역을 지배하며 '하나된 유럽'에 가깝기는 했지만,
1세기에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게르만(現 독일 및 폴란드 등 동유럽 지역) 영토를 상실한 이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브리타니아 역시 스코틀랜드 지역이나 아일랜드 지역을 지배하지 못해 '완전한 유럽 통합'을 이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은 여러 민족들과 국가들로 나눠지게 됩니다. 특히 여기에는 유럽 특유의 지형도 한 몫 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총, 균, 쇠』라는 책에서 지적하듯이 유럽은 지형이 워낙 복잡해서 통일된 정치 체제가 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강이나 산맥 등을 따라 지역이 서로 단절되는 모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혈통적으로는 같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국가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국가 간의 분쟁도 상당해 통합은 더욱 더 요원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민족 국가가 성립되면서 통일된 독일과 이탈리아가 등장하는 등 통합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가는 듯 했으나,
민족 국가들끼리 충돌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 국가들 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유럽 통합의 아이디어: 단테
사실 유럽이 여러 국가들로 쪼개진 중세 시절에도 '하나의 유럽'이라는 아이디어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영향을 준 게르만족들이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아 서로마 제국을 계승한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도 전체 유럽을 지배하지는 못했고, 이후 황권이 약화되면서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볼테르에게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신곡』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저술가 단테 알리기에리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정론』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에서 인류 사회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제국'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유럽 통합에 대한 이념을 제창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로마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가톨릭의 대표자인 교황 간의 갈등이 극심한 데다, 단테가 속한 이탈리아의 도시들도 때에 따라 황제 혹은 교황 편을 들며 독립적인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단테는 책에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로 단결된 공동체, 제국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통합된 하나의 유럽을 생각했습니다.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여러 왕들이 나눠서 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각 국가들의 분쟁을 중재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왕 위에 황제, 제국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때문에 제국의 황제가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유럽에서 계속되는 국가 간의 전쟁도 없을 것이고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럽 통합의 아이디어: 피에르 뒤부아
한편 프랑스의 피에르 뒤부아는 『성지수복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유럽 연합을 꿈꿨습니다. 갑자기 유럽 통합이라는 데 왜 성지 수복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되찾자는 결의가 이뤄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2백 년 동안이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2백 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십자군은 실패했고, 성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 하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성지 회복에 대한 열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필립 4세의 국왕 법률가로 활동했던 피에르 뒤부아는 1306년 저술한 『성지수복론』에서 유럽 연합을 구성한 뒤, 성지를 회복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뒤부아는 가톨릭 교황의 주재 하에 각 유럽 국가들의 왕들이 서로 분쟁을 끝내기 위한 공의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어느 국가가 평화를 깨고 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공의회 차원에서 경제를 봉쇄하거나 무력 제재를 가하고 배상금 등을 받아 예루살렘 성지를 수복하는 십자군 비용에 보태야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단테가 제국을 꿈꿨다면, 뒤부아는 종교적인 입장에서 성지 회복을 위한 국가들 간의 느슨한 연합 체제를 꿈꿨습니다.
사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현재에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단, '하나의 유럽'이라는 아이디어가 갑자기 20세기에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럽 연합의 아버지가 등장하다
각 민족 국가들이 대립해 충돌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전장으로 몰아넣었고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등 참전국들은 서로에게 강한 원한을 품게 됩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동맹국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독일 등에 파시즘이 발호하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하나의 유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 강화회의에서 '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제출한 장 모네,
그리고 알자스 로렌 출신의 변호사로 프랑스 국회에 입성하게 된 로베르 쉬먕입니다.
장 모네와 로베르 쉬먕, 그리고 초기 유럽 경제 공동체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코로나19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