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농업 작황이 불안정했던 당시 이집트 상황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 전문가에 따르면, 파라오는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 중 어느 것을 먼저 겪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파라오는 7년 풍년을 먼저 겪기로 했습니다. 7년 풍년 기간 동안에 파라오는 미래에 다가올 7년의 가뭄을 견뎌낼 만큼 충분한 곡식을 저장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무런 준비도 없이 7년 흉년을 먼저 맞았다면 어땠을까요.
파라오의 꿈과 관련된 일화는 은퇴한 다음 노후자금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은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금리가 높았을 때는 노후자금을 예·적금에 맡겨 두고 빼 써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보건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은퇴생활 기간은 늘어나고 있는데 금리가 떨어지면서 은퇴자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노후자금의 수명을 늘리려면 저축에서 투자로 노후자금의 서식지를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률의 순서에 따라 은퇴자 A씨와 B씨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금부터 살펴봅시다. 앞서 파라오의 사례처럼 투자 기간은 14년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은퇴할 당시 A씨와 B씨가 보유한 노후자금은 1,000만 원입니다. 먼저 A씨는 처음 7년 동안은 수익을 내고 이어진 7년 동안은 손실을 봤습니다. 반대로 B씨는 처음 7년 동안 손실을 보고 나중 7년 동안은 이익을 봤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4년 동안 B씨는 A씨와 정반대 순서로 수익률을 얻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얻은 수익률의 순서는 정반대이지만, 투자 기간 동안 얻은 산술평균 수익률(연 5%)과 기하평균 수익률(연 3.8%)은 동일합니다.
연차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산술평균 | 기하평균 |
---|---|---|---|---|---|---|---|---|---|---|---|---|---|---|---|---|
A씨 | 10% | 15% | 20% | 25% | 20% | 15% | 10% | -3% | -5% | -10% | -15% | -10% | -5% | -3% | 5% | 3.8% |
B씨 | -3% | -5% | -10% | -15% | -10% | -5% | -3% | 10% | 15% | 20% | 25% | 20% | 15% | 10% | 5% | 3.8% |
그러면 14년이 지난 다음 A씨와 B씨 중 어느 쪽 계좌에 더 많은 자금이 남아 있을까요. 전반부 7년 동안 수익을 냈던 A씨의 계좌일까요, 아니면 후반부 7년 동안 수익이 났던 B씨의 계좌일까요. 먼저 A씨 계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A씨 계좌의 잔고는 처음 1,000만 원으로 시작해서 7년이 지났을 때 2,880만 원까지 늘어납니다.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계좌 잔고가 감소하기 시작해 투자기간이 끝났을 때는 1,684만 원이 남습니다.
B씨는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7년 동안 연속해서 손실을 봅니다. 7년 차가 끝났을 무렵 B씨의 계좌에는 585만 원이 남아 있습니다. 8년 차부터는 수익률이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계좌 잔고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14년 차가 끝났을 때 계좌에는 1,684만 원이 남게 됩니다. 중간에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참고 이겨내면 결국에는 A씨와 동일한 수익을 얻게 됩니다.
B씨는 어떨까요.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첫 해에 100만 원을 떼어 생활비로 사용해야 하는 데다가 -3%의 손실까지 입는 바람에 잔고가 873만 원까지 줄어듭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손실을 보면서 생활비까지 빼서 쓰면 계좌 잔고가 눈에 띄게 빠르게 감소하게 됩니다. 급기야 8년 차에는 잔고가 모자라 60만 원만 인출할 수 있고, 이후에는 계좌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더 이상 생활비를 꺼내 쓸 수 없습니다.
투자기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A씨와 B씨가 같았습니다. 다만 수익률을 맞이하는 순서가 달랐습니다. A씨는 전반부에 수익을 내고 후반부에 손실을 봤습니다. 반면 B씨는 전반에 손실을 보고 후반에 수익을 냈습니다. 계좌에서 자금을 빼서 쓰지 않을 때는 수익률의 순서가 잔고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자금을 인출하게 되면 수익률 순서에 따라 계좌 잔고가 달라지게 되는데, 이를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 of return risk)'이라고 합니다.
투자를 하면서 생활비를 빼 써야 한다면 초기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파라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7년 풍년을 먼저 맞이하면 다음에 다가올 7년 흉년을 준비할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7년 흉년을 먼저 받으면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은퇴자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왕이면 은퇴생활 초기에 괜찮은 수익을 얻는 편이 혹독한 손실을 입는 쪽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파라오는 풍년과 흉년의 순서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는지 몰라도, 은퇴자는 수익률의 순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은퇴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승장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하락장을 먼저 맞닥뜨려야 할 때에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먼저 인출액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비해 생활비를 절반만 쓴다고 해봅시다. 매년 100만 원이 아니라 50만 원씩 인출하면 은퇴생활 도중에 파산을 맞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A씨는 투자기간 내내 원금을 지키면서 생활비를 빼 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1,000만 원이었던 계좌 잔고가 상승장을 거치면서 7년 차에는 2,203만 원까지 불어납니다. 이후 하락장을 맞아 잔고가 줄어들기는 해도 14년 차가 끝날 무렵에도 계좌에 원금보다 많은 돈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은퇴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로 하락장을 맞은 B씨입니다. B씨는 도중에 파산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B씨의 계좌 잔고는 1,000만 원에서 시작해서 투자기간 내내 줄어들기는 해도 14년 차에도 250만 원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도 파산을 피하려고 마른 수건을 비틀어 짜듯이 무작정 생활비 규모를 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익률 순서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요.
정액 인출과 마찬가지로 정률 인출 방법에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정액 인출 방법을 택하면 매년 인출하는 금액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인출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중도에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정률 인출 방법을 택하면 정해진 투자기간에 파산할 염려는 없지만 수익률에 따라 매년 인출하는 금액이 들쑥날쑥하는 게 문제입니다.
A씨의 경우 7년 차에는 139만 원을 인출해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지만, 14년 차에는 44만 원밖에 빼 쓸 수 없습니다. B씨는 첫 해에 100만 원을 쓸 수 있지만 8년 차와 9년 차에는 28만 원만 빼 쓸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은퇴생활 전반에 수익률이 좋아야 투자기간 내내 상대적으로 많은 금액을 인출할 수 있습니다. A씨가 14년 동안 인출한 금액은 전부 합하면 1,414만 원입니다. 한 해 평균 101만 원을 생활비로 사용한 셈입니다. 이에 비해 B씨는 14년 동안 665만 원을 인출해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어 한 해 평균 47만 원을 쓸 수 있는 셈입니다.
수익률이 좋다고 필요하지도 않은 지출을 하면서 흥청망청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은퇴 자산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인출액에 상한을 둘 수도 있습니다. 앞서 A씨의 사례에서 기본적으로 연초에 잔액의 10%를 인출하되, 그 금액이 아무리 많아도 120만 원을 넘지 않도록 정하는 것입니다. 투자기간 전반부에 높은 수익을 얻은 A씨는 5년 차부터 9년 차까지 상한에 해당하는 120만 원을 인출하게 됩니다. 투자기간이 종료됐을 때 잔고는 407만 원으로, 상한 적용을 하지 않았을 때 잔고 385만 원보다 많습니다. 그만큼 은퇴 자산의 수명이 늘어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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