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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가는 우리 종이, 한지
(2024년 08월 기사)

천 년을 가는 우리 종이,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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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8월 기사)

석가탑 사리함 안 비단보에 싸여 있던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닥종이 즉 한지로 만든 두루마리였다. 1966년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연대는 704~751년으로 자그마치 1200년 남짓을 좀벌레에 시달리면서도 두루마리 일부만 닳았을 뿐 그 형체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천 년을 가는 종이, 한지(韓紙)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사진출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전통 뜨기 기법으로 제작하는 한지

한지는 주로 닥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인피섬유를 원료로 하여 전통적 방법인 사람의 손으로 직접 뜬 종이다. 수작업으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정성 그 자체다. 닥나무를 다발로 묶어 가마솥에 세우고 가마니로 둘러 싼 뒤 불을 지펴 껍질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삶아 껍질을 벗겨 말린다. 말린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발로 밟은 다음 하얀 내피 부분만 가려내 양잿물을 섞어 3시간 이상 삶아 물을 짜낸다. 여기에 닥풀 뿌리를 으깨 짜낸 끈적한 물을 혼합하여 발로 종이물을 걸러서 뜨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이것이 전통 한지의 제작법이다. 닥나무 인피섬유는 화학펄프로 사용하는 침엽수의 섬유길이(3mm)나 활엽수의 섬유길이(1mm)보다 훨씬 긴 섬유 길이(10mm 내외)를 가지고 있어서 목재 펄프에 비해 조직 자체의 강도가 뛰어나고 섬유의 결합도 강하여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다. 한지가 강한 예는 몇 장을 겹쳐 바른 한지로 갑옷을 만든 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지는 닥나무를 원료로 제작되므로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여러 겹으로 배접하므로 견고하고 단단하며, 다양한 색지가 있어 개성 있는 작품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한지는 천년의 수명을 가졌다고 할 정도로 내구성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세월이 가면 갈수록 결이 고와지고 수명이 오래간다.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한 K-paper의 재해석

하지만 우리 전통의 한지는 서양에서 들어온 펄프로 만든 종이에 밀려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유의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의외의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다. 세계적인 루브르 박물관이 세월의 흔적이 씌워진 고미술품이나 고가구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십여 세기 전의 고서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마법의 재료로 한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 승리의 여신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텐베르그의 성경, 렘브란트의 드로잉, 백자 등을 천연종이를 으깨고 짓이겨서 낡은 조각상과 가구, 도자기, 그림 및 액자 등에 생긴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고, 그 겉 표면을 세월의 흔적이 밴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데에 한지가 사용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베테랑 복원사들로부터 '고품격 복원지'란 평가를 받은 우리의 전통 한지는 신성로마제국시대 막시밀리안2세가 쓰던 가구를 복원하는 데 깔끔한 마무리로 각광받았고, 로스차일드 컬렉션 복원에도 긴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전통 한지의 마법이 루브르의 빛 바랜 보물들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지의 우수한 품질은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전통한지는 예술품 복원 뿐만 아니라 고급 예술품을 해외로 보낼 때 표구용지와 포장용지 등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한지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 가장 많은 분야가 공예와 의류이다. 한지를 사용해 다양한 공예품과 일상 소품을 만드는 작가가 많아지고, 한지로 만든 의류와 패션 소품도 점점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한지의 활용성이 뛰어나고 적용할 수 있는 분야의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K-paper 한지의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직지에 쓰인 우리의 종이.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우리의 한지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앞으로 우리 선조들이 남기 위대한 유산의 맹활약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Tip. 방문해 보면 좋을 한지 관련 공간

사진출처: 전주 한지박물관(한국관광공사 김지호)-한국관광공사

전통적으로 한지를 생산하던 지역에는 한지 관련 공간이 마련되어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한지를 테마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박물관, 체험관, 전시관 등 이름은 제 각각이지만 모두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배우고, 체험을 통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각별한 공간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원주 한지테마파크를 비롯해 전주 한지박물관, 문경 한지박물관, 완주 한지체험관, 괴산 한지체험박물관, 안동 한지상설전시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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