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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브렌트우즈 체제의 등장
(2022년 07월 기사)

포스트 브렌트우즈 체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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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07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안녕하세요. 제법 날씨도 더워지고 장마 소식도 들려오는 여름입니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만큼 불쾌지수도 많이 올라갈 수도 있는 계절이니, 짜증나고 불쾌한 날씨더라도 잘 이겨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브렌트우즈 체제의 붕괴와 이후 포스트 브렌트우즈 체제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닉슨 쇼크

1971년 미국의 대외수지 적자와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경기는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은 약 연 6% 수준이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1971년 8월 13일 닉슨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별장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재무부 관료들과 비밀 회동을 가진 뒤, 8월 15일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미국이 금 태환을 포기하겠다는 결정, 브렌트우즈 체제의 종료를 전격 발표합니다.
닉슨 대통령의 조치는 금 태환 정지 외에도 무역수지 개선 및 물가 안정을 위해 수입품에 수입 과징금을 10% 부과하는 것, 임금과 상품 가격을 90일간 동결시키겠다는 조항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바로 금 태환 정지였습니다. 변동 환율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증시 변동을 표현한 사진
닉슨 쇼크, 즉 브렌트우즈 체제 포기에 대한 평가는 여러모로 갈립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닉슨 대통령이 담대한 결정을 했다며 환영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발표한 다음 날 뉴욕 증시는 크게 상승했고, 뉴욕타임스는 닉슨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사설을 지면에 실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등은 후일 브렌트우즈 체제의 붕괴가 좋은 결정만은 아니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브렌트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변동환율제가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자 유럽의 화폐, 유로화 등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불안정화화면서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후에 유로화 사태에 대해 살펴볼 것이지만, 폴 볼커의 지적은 일부 일리가 있다고 판단이 듭니다.

왜 달러는 기축통화의 위치를 유지하게 됐을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달러를 사도 금으로 바꾸는 것은 그때그때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니, 브렌트우즈 체제 때와 달리 달러는 기축통화의 위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의 기축통화 위치를 차지했던 영국의 파운드화는 금본위제의 몰락과 함께 기축통화의 위치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국 파운드화는 존재하지만 영국 파운드화를 기축통화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달러는 여전히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고, 금 태환 여부와 상관없이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대영제국의 위치를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식민지를 지키는 데 급급했습니다. 당시에도 이미 세계의 중심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세계의 공장'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금 태환 정지가 이뤄졌기는 하나 미국의 영향력은 상당했고, 달러화의 가치 역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에 의지해 기축통화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달러 기축통화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그림
둘째는 석유수출국기구 OPEC 덕분입니다. 석유수출국들 간의 모임인 OPEC은 1960년 설립되기는 했지만 딱히 영향력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해서 OPEC은 전세계에 충격과 자신의 영향력을 내보이게 됩니다.
바로 1973년 오일쇼크가 그것입니다. 제4차 중동 전쟁 당시 OPEC에 속한 산유국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이라크, 이란 제국, 시리아, 튀니지는 석유를 감산하고 원유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동 국가들의 주요 적국인 이스라엘에 협력적인 나라에는 원유 수출 금지를 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원유 가격이 무려 한 달 만에 4배 가량 상승하며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고,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 문제는 1980년대가 되어서야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OPEC의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1974년 OPEC은 미국과 협의를 통해 산유국들의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체결하겠다는 협약을 체결합니다. 산유국들의 원유를 사고 싶다면 자국 통화가 아니라 달러화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즉, 과거의 금이 원유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달러에 대한 수요를 계속 유지시켰고 결국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치 또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 브렌트우즈 체제 속 새로운 통화에 대한 논의

한편 유럽에서는 미국이 브렌트우즈 체제를 포기하면서 경제 안정을 위해 새로운 통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유로화의 시작이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유로화의 본격적인 태동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유럽 연합 로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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