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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2021년 12월 기사)

유럽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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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2월 기사)
기고: IT지원팀 권형우 선임매니저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어느덧 겨울입니다. 이미 첫눈 소식도 찾아오고,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 것이 느껴집니다. 이럴수록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로베르 쉬망을 소개하면서 글 말미에 새로운 환경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적으며 글을 마쳤습니다. 과연 그 변화란 무엇일까요?

모겐소 플랜의 등장과 폐기

1945년 독일이 패전하기 전, 이미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은 연합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은 독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특히 연합국의 맹주인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인 독일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 최대의 공업 국가인 독일을 낙농국가로 바꿔서 전쟁을 일으킬 능력을 철저히 없애 버려야한다는 강경론이 득세했는데, 이 강경론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독일 낙농국가화 계획, '모겐소 플랜'입니다.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모겐소 주니어의 이름을 딴 이 정책은 1944년 9월 16일, 미국과 영국이 가진 퀘벡 회담에서 연합국의 독일의 전후 관리 정책으로 확정됩니다. 사실 이 계획은 상당히 무시무시한 계획인데 독일의 최대 공업지역인 루르 지역을 완전 파괴한 뒤 해당 지역은 국제 연합이 관리하고, 독일을 남부와 북부로 분단시키며 모든 설비를 연합국이 압류하며, 독일 국민들이 전쟁 배상을 위해 독일 외 지역에서 강제노동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퀘벡 회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대화 사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모겐소 플랜의 큰 지지자였지만, 의외로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모겐소 플랜에 반대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 경제적으로 몰락할 경우 유럽의 경제성장이 지연될 것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정작 무기원조권을 가지고 영국, 프랑스를 압박하는 바람에 이 정책은 채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도 모겐소 플랜에 대한 계획이 나치 정부에 입수되면서, 독일 나치 정부가 '연합국에 대한 철저한 항전'을 외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독일이 패전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모겐소 플랜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헨리 모겐소는 재무장관직을 사직하며 독일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주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실제로 모겐소 플랜대로 일부 공업지대의 설비가 해체되기는 했지만 연합국은 고의적인 '헛점'을 만들어 독일의 설비 해체 규모를 줄였고, 당시 모겐소와 대립했던 미국 전쟁부(미국 육군을 관리하는 내각 체제)는 독일의 경제를 보존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소련의 엄습과 미국, 영국, 프랑스의 위기감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같은 연합국인 소련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시작 전에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분할점령하는 등의 움직임을 펼쳤으나 애초에 인종주의와 반공에 물든 독일 나치와의 충돌은 필연적이었고, 독일의 침공으로 무려 3천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면서도 독일에 저항, 마침내 승리를 거둡니다.
하지만 소련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사상을 가진 국가였고,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유럽 국가들과는 나치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처칠은 독일이 패전하면, 패전한 독일군과 영미 연합군이 서로 연합해 소련군을 공격하는 '언싱커블 작전'을 구상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미국 러시아 분쟁 그림
실제로 소련은 1945년 이후 자신들이 점령한 동유럽 국가들에 공산 혁명을 촉발시켜 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을 공산화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는 독일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소련이 점령한 독일 지역 역시 공산화가 이뤄졌습니다. 이런 빠른 공산화 움직임에 당시 독일을 소련과 같이 분할 점령하고 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크게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은 소련에 대한 경계를 계속하면서 독일의 경제 부흥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미 모겐소 플랜이 폐지되면서 독일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낙농국가'가 아닌, '안정적인 생산적인 국가'로 수정된 상태였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의 국무장관 조지 마셜은 서유럽의 부흥을 위한 '마셜 플랜' 대상국가에 독일을 같이 포함시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독일 화폐 개혁과 소련의 분노

한편 마셜 플랜 와중에 독일은 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오랜 전쟁으로 독일 지역의 공업시설이 파괴되면서 물품 공급이 크게 부족해진 것이 원인이었고, 둘째는 독일 나치 정부가 전쟁 중에 비용 마련을 위해 당시 화폐였던 라이히스마르크를 마구 발행하면서 화폐 가치가 크게 폭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전쟁 후 독일에서 라이히스마르크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자연스레 화폐 개혁이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계획을 미국과 영국이 소련도 모르게 갑자기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새로운 화폐인 도이체마르크를 미국에서 몰래 인쇄하면서까지 화폐 개혁을 하려는 것을 숨겼습니다. 1948년 6월 20일, 미국과 영국은 기존의 라이히스마르크 대신 도이체마르크를 쓰는 화폐 개혁을 기습적으로 실시했고, 소련은 갑작스런 화폐 개혁에 분노하게 됩니다.
독일 화폐 마르크 사진
소련이 분노한 이유는 당연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화폐개혁을 실시하면서 새로운 도이체마르크의 사용처를 이 국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독일 지역으로 한정했습니다. 즉, 애초에 소련이 지배하고 있는 동부 독일지역은 논외였던 것입니다. 화폐 사용처를 나눈다는 것은 소련을 뺀 나머지 국가들이 연합해, 독일 지역을 분단시키더라도 독일 내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시키겠다는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급작스런 화폐개혁에 분노한 소련은 연합국공동관리위원회에서 탈퇴한 뒤, 연합국에 대한 보복에 나섭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글에서 뵈겠습니다.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

댓글목록

강인규님의 댓글

강인규

유럽, 소련과 미국의 역사적 흐름을 간결하게 설명해 주니 이해가 쉬운 듯 합니다.